SNS에서 가장 핫한 연예인을 꼽으라면 단연코 설리다. 예쁘고 상큼한 대표 ‘과즙상’ 아이돌이던 그녀는 어느 날 대중의 기대에서 벗어난 비과즙성 연애를 시작했다. 이어 걸그룹을 탈퇴하더니 각종 수위 높은 사진들을 SNS에 올렸다. 설리팬들의 탈덕 선언이 이어지고 수많은 비난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심지어 사진을 올리지 말라는 간곡한 애원이 넘쳐났다.
그런 그녀의 핫한 계정에 노브라로 추정되는 사진이 업로드된다. 문제의 사진은 우리사회가 남의 젖꼭지에 어마무시한 관심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에는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당당한 성희롱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욕설과 폭언도 떳떳했다. 각종 기사들은 선정성이 진정성인 양 그녀를 천박하게 소비했다. 설리의 옷 위로 젖꼭지가 도드라졌다는 것, 그것이 그 모든 폭력적 언행의 근거였다. 보다 못한 한 외국인이 이런 댓글을 달았다. “젖꼭지는 남자든 여자든 누구에게나 있다.”
맞는 말이다. 젖꼭지는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여자의 젖꼭지는 감추어져야 한다. 이 땅에서 올바른 젖가슴이 되려면 브라가 감싸주는 검열된 모양새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젖가슴은 사적인 영역에 숨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암묵적인 윤리다. 뭔가 애매하고 이중적인 냄새가 나는. 섹시함을 무슨 덕목처럼 강요하고 커다란 젖가슴을 돋보이게 하는 건 적극 권장하면서, 젖꼭지가 달린 온전한 젖가슴의 형태를 드러내는 건 부도덕하다고 손가락질한다. 설마 여자의 가슴이란 모름지기 한 남자만을 위해 존재하고 보여질 때 윤리적인 젖가슴이 된다는 전근대적인 사고가 아직도 통용되는 걸까? 섬뜩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젖꼭지를, 남자가 아닌 아이에게 물려야 할 때다. 이때 젖가슴은 음란함이 아닌 성스러움을 확보한다. 그런데 이 성스러운 젖가슴이 계속 성스럽기 위해서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젖을 주는 모성애적 ‘이미지’는 성스러울지 몰라도, 실제로 젖 먹이는 모습은 상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방송인 정가은이 아이에게 젖을 주는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관심종자라고 규정하고 불편하고 야한 사진이라고 몰아붙였다. 젖가슴이 모유 수유라는 본연의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도, 아이가 젖꼭지를 물고 있어 젖가슴이 다 보이는 것도 아닌데도, 그 사진은 불온하고 음란하다고 욕을 먹었다. 젖 먹이는 젖가슴을 제2의 성기로 바라보는 시선의 정당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기나긴 역사를 놓고보자면, 자연이 여자의 몸에 달아준 양육의 자원이 음란하다고 규정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조선시대의 여자들은 젖가슴이 젖꼭지째로 훤히 드러나는 짧은 저고리를 입고 다녔다. 남의 젖꼭지에 아무도 관심이 없던 조선 땅에서 남의 젖가슴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건 서양인들이었다. 그들에게 조선 여자들의 벌거벗은 젖가슴은 야만이었고 포르노였다. 1924년 치르센이라는 외국인은 ‹신여성›이라는 잡지에 「통옷을 입는 것이 좃켓슴니다」라는 글을 실었다.
“나는 조선에 나온 지 여러해됨니다마는…… 젖가슴을 함브로 드러내놋코 또 거긔를 친친감어서 졸라매는 조선녀자들은 엇전 생각인지 도모지 짐작할수 업섯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내재화했고, 젖가슴은 브라를 통해 몸이 아닌 몸매가 되어야 비로소 안 음란해지는 현실에 처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젖가슴이 무엇이길래?’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우리는 왜 브라를 착용하는가? 어떤 이유로 브라를 차야 한다고 배웠더라? 그러고 보니 여중생 시절, 까만 브라자를 하고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한테 등짝을 세게 얻어맞은 일이 떠오른다. 까만 브라자도 규정 위반, 런닝셔츠를 안 입어 흰색 반팔 블라우스에 까만 브라자 끈이 노골적으로 비치는 것도 규정 위반이라며 맞았는데, 그게 사람을 때릴 이유가 되는 거였는지.
문제는 젖가슴에 너무 많은 기호와 상징이 투사되어 있다는 데 있다. 여성, 모성, 성, 섹슈얼리티, 에로티시즘, 미, 덕, 수치, 음란, 성스러움…… 원래는 아이를 굶어죽게 하지 말라고 자연이 달아준 건데, 언제부터인가 젖가슴은 성적인 허기, 영혼의 허기, 존재의 허기까지 달래주어야 하고, 더불어 욕까지 먹어야 하는 서글픈 덩어리가 되었다. 하루 종일 차고 있던 까만 브라자를 벗고, 귄터 그라스의 『넙치』를 인용해본다.
“우리가 세 개의 유방의 신화를 다시 만들어냄으로써, 어쩌면 우리는 결과적으로 남자들의 허황된 생각, 즉 남자들의 젖꼭지 트라우마를 채워주는 게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남자들은─이 사실은 널리 알려야 해요─지금까지 한 번도 두 개의 유방으로 만족한 적이 없으니까요.”
노브라 리얼 에피소드
Episode 1: 뽕브라 아닌데 자연산 수치심인데
A양은 어릴 때부터 발육이 남달랐다. 이상하게 남들보다 생리를 일찍 시작한 것도 아닌데 가슴만은 남들의 배로 컸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남자애들은 A양을 놀려댔고, 다른 반 남자애들은 A양의 가슴을 구경하러 왔다. 매일매일이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A양의 아버지가 A양을 물끄러미 보다가 A양의 엄마한테 화를 냈다. 도대체 애한테 브라자를 어떤 걸 사주길래 애 가슴이 저렇게 톡 튀어나왔냐고 말이다. A양은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대체 이깟 가슴이 뭐라고 이렇게 나를 곤경에 빠뜨린단 말인가! 원래 내 가슴이 커서 그런 거라고 항의했지만 A양의 아버지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A양이 뽕브라를 하고 다닌다고 믿는다.
엄마 역시 딸의 큰 가슴을 마뜩찮아했다. 툭하면 딸의 가슴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저거, 에미보다 젖이 더 크네. 누구 닮아서, 원……” 하며 혀를 찼다. 엄마는 가슴 큰 여자는 둔하고 멍청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A양은 늘 등을 구부려 가슴을 숨기고 다녔다. 덕분에 체형이 그대로 굳어 구부정하게 되었다.
Episode 2: 아, 브라! 덥다카다, 브라!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미친 듯이 더운 날에도 B양의 짠돌이 아빠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랬듯 에어컨은 그저 장식품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B양은 몇 번인지도 모를 샤워를 하면서 팬티에 생리대를 차고, 가슴에 브라를 하고, 바지와 티셔츠를 입는 걸 반복했다. 그때마다 엉덩이와 브라 와이어 아래 난 땀띠가 따끔따끔했다. 괘씸한 누진제 때문에, 살벌한 더위 때문에, 세상 하직할 판이었다. B양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진짜 에어컨 딱 한 번만 틀어주면 안 돼요? 뉴스에 더워 죽는 사람도 나오던데……” 그러나 아빠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덥다고 생각하니까 더 더운 거야. 선풍기가 이렇게 시원한데 뭐가 더워.”
B양은 9번째 샤워를 마치고, 브라와 생리대와 티셔츠와 바지를 입는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욕실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바람만 내뿜는 선풍기 앞에서 웃통을 까고 빤쓰만 입고 드러누워 티브이를 보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왠지 모를 원망과 서러움이 동시에 일었다. 순간, 꽉꽉 몸속에 눌러 더는 들어가지도 않는 열이 폭발해버렸다. “아빠는 그렇게 벗고 있으니 시원하겠지! 브라자에! 생리대에! 이게 얼마나 더운지 알아? 체온이 얼마나 올라가는데! 어어엉엉엉……” B양은 저도 모르게 엉엉 소리를 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녀의 아빠는 말없이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고 한다.
Episode 3: 어디선가 브라를 찾는 초인종이 울리고
독립한 이후 C양에게 가장 적나라하고도 절실하게 와닿은 자유는 브라로부터의 자유였다. 할아버지와 남동생이 있는 집에서는 항상 속옷을 모두 갖춰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늦둥이 남동생이 자신의 방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 통에 주말에는 잘 때도 브라를 하고 있어야 했다.
독립을 한 뒤 주말에 노브라로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볼 때면 C양은 무척 행복했다. 한 유명 유튜버가 여자가 느끼는 최고의 오르가즘은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 브라의 훅을 푸는 순간에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독립하길 백 번 잘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주말을 깨는 소리가 있으니,
띵동!
초인종 소리다. 행복은 사라지고,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누구세요’가 아닌 ‘잠시만요!’를 먼저 외치고 본다. 그리곤 다급한 마음으로 브라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코딱지만한 방에 서랍장은 왜 이리 먼지, 브라를 차는 시간은 또 왜 이리 오래 걸리는지. 결국 띵동 소리가 한 번 더 들리고야 만다.
찾아올 사람 없는 주말, 이 초인종 소리는 대부분 정기배송 생수를 전해주는 택배기사다. 무거운 물을 전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그분이 다녀간 후면 진기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이놈의 택배, 안 시킬 수도 없고. 시금치나물처럼 축 처져서는 브라의 훅을 푸는, 몇 번의 과정을 되풀이한 후 C양은 머리를 쓴답시고 팔짱을 끼거나 헐렁하게 앞섶에 공간을 만드는 자세들을 시도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민망했다. 택배기사는 수시로 봐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제길. C양은 결국 두꺼운 잠바를 현관문 옆에 걸어두기로 한다. 브라를 입었다 벗었다 하느니, 두꺼운 옷 안에 가슴을 숨겨두는 게 편하리란 셈에서였다. 여름엔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노브라로 민망해지느니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낫지.
Episode 4: 노브라 좀비
D군은 로켓보다 빠른 택배 배송 회사에 취업했다. 직업 특성상,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들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온갖 무용담 같은 배송담들이 넘쳐흘렀다. 가장 놀라운 얘기는 누군가 나체로 물건을 수령하러 나온 여자를 봤다는 것이다. 그러자 노브라로 나온 여자들을 봤다는 배송담들도 줄줄이 이어졌다. D군은 가슴이 뛰었다. 자신도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란 생각에. 배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D군은 이상한 여자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등을 뒤로 쭉 빼고 팔을 앞으로 쑥 내밀거나 택배가 몹시 가벼운데도 불구하고 팔짱을 끼고 현관에 내려달라고 하는 여자들. 점심시간에 동료에게 그 얘기를 하자 동료는 웃으며 말했다.
“아, 노브라 좀비들?”
아! D군은 그제야 좀비 자세의 여자들과 팔짱낀 여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브라의 여자들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야하지 않았고,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후, 섹시하기보단 안쓰러운 노브라 좀비들을 만나면 D군은 최대한 시선을 아래로 내려주었다. 그게 그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매너였다.
Episode 5: 튀는 가슴 위에 나는 부라자
초등학교 때 E양은 수영부였다. 5학년이 되자 수영부 여자애들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4학년 여자애와 E양, 이렇게 둘만 남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E양은 여자애들이 수영부를 관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젖가슴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몽우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2학기 부서활동 첫날, 4학년 여자애는 브라가 장착된 수영복을 입고 왔다. E양은 여전히 브라가 없었다. E양의 가슴은 아주 작았지만, 수영복을 입자 두드러졌다. 창피했지만 하는 수 없이 수영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수영부의 짓궂은 남자애들이 E양의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몽우리진 젖가슴이 아픈 것보다,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브라를 사달라고 했다. E양의 엄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동네 시장에 데려갔고, 시장 아주머니의 강력 추천에 따라 브라를 샀다.
다음날, 브라를 차고 안정된 마음으로 등교를 한 후 수영부를 탈퇴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브라를 샀다고 자랑했다. 한 친구가 그녀의 티셔츠를 슬쩍 열어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건 엄마들이 하는 거잖아.” 다른 친구도 슬쩍 보더니 말했다. “얘, 아줌마들 하는 부라자 했어! 깔깔깔.” 다들 웃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귀여운 캐릭터의 스포츠 브라를 찰 때, E양은 베이지색 레이스에 컵 두 짝이 달린 부라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E양은 남자애들이 가슴을 만지던 순간보다 더 부끄러워졌다.
Episode 6: 뭉치면 죽는다
젖뭉침. F양이 애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정확하게 의미를 알게 된 단어다. 작은 스침만 가슴에 느껴져도 너무나도 아팠다. 젖은 잘 나오지 않고, 가슴은 가슴대로 아프고. 급기야는 젖꼭지가 갈라지고 피가 났다. 엄마가 되는 건 정말 더럽게 어려웠다. 조리원에 있을 땐 간호사들에게 마사지를 받으면 그나마 나아지곤 했는데.
F양이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 고통의 실크로드가 펼쳐졌다. 선물받은 수유브라를 하고 수유패드까지 덧대자 젖꼭지가 쓸리고 젖뭉침이 심해지면서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애한테 젖을 물려야 풀려” 하는 친정엄마의 말은 효과가 없었다. 풀리기는커녕 그냥 아프기만 아파 비명을 지르고, 딸아이를 억지로 떼어내야 했다.
결국 다음날, 끙끙 앓던 그녀는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그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브라를 해야 되는 비극적 뫼비우스의 띠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의 용감함과 인간의 극한고통을 핑계 삼아 노브라를 선택하기엔, 부풀어 오른 가슴이 너무나 와일드하게 입체적이었다. 새어나오는 젖이 대동여지도를 그리는 위험도 감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F양은 아픈 젖가슴에 지옥 같은 브라를 차고 택시에 올랐다. 그때 그녀는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Episode 7: 너만 좋냐, 나도 좋다, 글래머.
G양의 남친은 가슴이 컸다. 그녀는 가슴이 큰 남자가 좋았다. 큰 가슴을 만질 때의 촉감이 좋았다. 어느 날 G양이 모텔에서 장난기가 발동해 남친에게 브라를 채우려고 들이댔을 때, 남친이 불같이 화를 냈다. G양은 별것도 아닌 장난에 화를 내는 게 맘이 상해서 대판 싸웠다. 헤어지자는 고성이 오간 후, 둘은 사이좋게 들어간 모텔에서 각자 찢어져서 나왔다.
몇 주가 지난 후 이들 커플은 극적으로 화해했지만, G양의 남친은 G양 몰래 가슴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뒤였다. G양에게는 매력적인 그의 가슴이 그 자신에게는 큰 콤플렉스였던 것이다. G양은 크게 상심했다. 남친의 가슴을 더듬을 때마다 허전했고, 남친이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만족스러워할 때면 억울한 마음이 들곤 했다. 야,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Episode 8: 비키니보이
H군의 몸에 3차 성징이 찾아왔다. 가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부상 때문에 운동선수 생활을 그만두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어느 날 문득 가슴을 보니, 단단하고 큰 갑빠가 어느덧 몰캉하고 큰 젖가슴이 되어 있었다. 그러자 몸매 좋은 남자들을 위한 모든 장점을 갖춘 그의 얇은 면 티셔츠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옷이 되어버렸다. 한때는 가볍고 땀 흡수도 잘 되고 타이트하게 붙어 근육라인을 드러내주던 옷이었는데, 이제는 몰캉하고 둥그런 가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툭 튀어나온 젖꼭지는 마치 그를 꾸짖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는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던 얇은 면 티셔츠를 포기하려 했지만, 더운 날 그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하여 H군은 젖꼭지에 상처용 밴드를 붙이기 시작했다. 남성용 실리콘 유두밴드라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난 후에는 “오오 신기해라 이런 게 다 있담!” 하며 신세계를 맛보았다. 그러나 친구들이 수영장에 가자고 했을 때, H군은 급우울해졌다. 수영장을 가득 채울 비키니걸들을 볼 낯이, 아니 볼 몸이 없었던 것이다. 이 젖꼭지로 누구를 본단 말이냐! 제기랄, 비키니는 내가 입어야 되는 거 아냐?
결국 그는 다시 헬스장에 등록했다. 운동선수 시절의 몸을 복귀하고, 유두밴드와도 결별하리라 다짐했다. 좀만 기다려라, 비키니걸들아.
Episode 9: 뭣이 중헌디? 내 일신의 안위가 중허지
양의 집 앞에 팬티만 입은 낯선 여자가 드러누워 있었다. 그게 어학연수 동안 가장 큰 충격이었다. 햇빛이 J양 집 앞을 쨍쨍하게 지나고 있었고, 낯선 여자는 햇빛 아래 천을 깔고 브라의 훅을 풀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미국에선 노브라가 별일 아니란 걸 미드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남의 집 앞에서 그러고 있다니 너무 놀라웠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학교에 등교하자 캠퍼스 잔디 위에 비키니걸들이 한무더기였다. 하나같이 브라의 훅을 풀고 팬티만 입은 채로 드러누워 태닝을 즐기고 있었다.
J양은 처음에 이 광경들에 심란해졌다고 한다. 자신 안에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학교의 다른 한국인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자, 먼저 온 J양의 친구는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처음엔 엄청 놀랐는데 익숙해지면 너도 그러고 있을걸?”
시간이 흐르자 친구의 말이 맞았다. 물론, 집 앞이나 캠퍼스에서 팬티만 입은 채 태닝을 즐기기까지는 못했지만, J양은 이내 미국 친구들처럼 끈 없고 와이어가 없는 얇은 천 소재의 브라를 하고, 속이 훤히 보이고 소매가 길게 찢어진 짧은 민소매 티셔츠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가슴과 브라에 관심 갖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날이 추워지자 자연스레 노브라로 다녔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J양은 여전히 브라렛이나 노브라 차림이었다. 브라렛을 하고 흰 티셔츠 차림으로 친구를 만난 어느 여름날, 친구가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듯 J양의 가슴 쪽을 바라보았다. “야, 너 노브라야?” 친구는 J양의 티셔츠 등에 비치는 브라의 흔적을 보고 “휴우”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꼭지 모양이 드러나니까 브라를 바꾸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J양은 이제 와이어가 있는 브라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나는 노브라가 편해”라는 말을 한국식 어법으로 바꾸어 말했다. 변명하듯,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시크하고 무관심하게. “나 원래 와이어 있는 브라 못해. 불편해서.”
생활인문잡지
일러스트: 이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