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지도가 있다면 좋을텐데…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때 지도라 함은 이 앞에는 무엇이 놓여있고 갈림길에서는 어디로 가야하는 지에 대한 정답안내서 같은 것일테다.
건축가이자 그림작가 오영욱 (오기사)이 ‘인생의 지도’ (2014)를 펴냈다. 그러나 이 책은 정답안내서 같은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니히르반이라는 가상의 대륙에 섬세한 손그림으로 수놓아진 오솔길들은 독자를 인생의 여러 시기와 지도책의 페이지로 인도한다. 탄생이 시작점이라 최종 목적지는 뻔한 듯 하지만 미로같은 길을 영원히 따라 걷는 것도 가능하다. 다행히도 길가에 신기한 지형과 건축물과 인물들은 여행객들에게 조금 더 머물다 가라고 손짓하는 듯 하다. 최소한 다음 갈림길을 맞이할 때까지는 말이다. 앞서 이 길을 걸었던 누군가가 남겨놓은 친절한 캡션들은 독자들을 설레이고 위태로운 선택의 순간으로 이끈다. 지도 왼편의 짧은 아포리즘[1]들은 때로 유쾌하고 또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이런 형식의 어록들은 마치 보편적인 적용을 요구하는 듯 하나 이는 독자들의 평가에 달린 것. 특히 외국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어떤 한국적인 (또는 동양적인) 관조나 수긍을 감지할 수도 있겠다.
오영욱의 여행 에세이와 스케치는 지금까지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2006),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2008),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2012)등의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2013년에 출판된 ‘청혼: 너를 위해서라면 일요일엔 일을 하지 않겠어’는 배우 엄지원과의 연애와 결혼을 바탕으로 한 여행과 사랑에 관한 작품이다.
책에서 인용
Map 12: 헤어스타일에 민감한 마을
갈등
타협될 수 없는 갈등은
모든 이들의 영혼을 지치게 할 뿐이다.
그래서 아예 제대로 붙어서 이기든가,
지더라도 싸우지 않고서는 못 견딜 상황이 아니면
그냥 이해하고 양보하는 게 낫다.
Map 26: 니히르반 대학교
정치적 성향
정치적 신념은 대립을 낳고 증오를 키운다.
모두가 화해를 말하지만 누구도 진심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의 노예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신념을 심으려 하는
모습을 감춘 거대한 권력의 의도이자 실체다.
Map 43: 해바라기 감옥
분노
최고의 복수는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라는 격언을 언제나 되새겨야 한다.
분노는 복수를 할 수 없는 이들의 슬픔이다.
Map 89: 여자의 목장과 남자의 양어장
남자와 여자
남녀관계는
이해가 아닌 암기로 완성된다.
그들이 외워야 하는 내용은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나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과 일치한다.
하지만 연인들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고
부부는 더 이상 서로를 위해 노력할 여유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영원한 미완의 관계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인터뷰
안녕하세요.
이렇게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해야 하는데 ㅎㅎ 이렇게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배려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답변을 드리면, 남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저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방식 중 저의 것을 선택하기 위해 우선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습니다.
우선 제가 잘 하지 못하는 건 노래 부르기, 춤추기, 외워서 공부하기, 사람들과 친해지기, 그리고 말하기였습니다.
제가 잘 하는 건 그림 그리기(낙서하기), 글쓰기, 여행하기(놀러 다니기), 생각하기였고요.
그런데 건축가가 되기로 결정한 후
대학생 시절에 고민이 시작되었지요.
건축에 정해진 길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개 사람에게 매력을 뽐내며 말을 잘 하면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건 제가 잘 할 수 없는 일에 속했지요.
여행을 다니며 건축물을 보고 그리고 그에 대한 느낌을 글로 쓰기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어쨌든 건축을 전공하기로 했으니 차선책으로 제 결정에 책임을 지고 싶었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로 제가 좋아하기로 한 건축을 해보고 싶었던 거지요.
이제는 건축과 여행,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우선순위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게 서로 다른 게 아니라는 걸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굳이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결국 건축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줬던 계기가 건축이었으니깐요.
건축을 선택했으니 좋아하기로 했다.. 어떤 직업이나 분야를 좋아하는 것에 의지의 요소가 가미되는 것이 뭔가 새롭게 느껴지네요.
최소한 건축을 처음 선택할 때 싫어할만한 무언가를 선택했던 건 아니었으니깐요.
좋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스페인에서 살기로 했던 계기는 ‘그냥’에 가깝습니다.
15개월짜리 세계 여행을 하던 중에 ‘아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하는 느낌을 들게 해준 곳이 바르셀로나였거든요.
물론 그곳에 머물며 (비자를 받기 위해) 공부도 했고 훌륭한 건축 유산들도 두루 구경하고 다녔죠.
여행의 원칙이랄 것까지는 없고
우연성에 많이 기댑니다.
우연히 그곳에 갔고 우연히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는 거지요.
그리고 건축과 마찬가지로 내 앞에 놓여진 상황(여행지나 숙소나 기간, 예산 등등)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상황을 좋아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인도, 페루, 호주는 조금 다른 이야긴데
아내와 함께 우연한 배낭여행(Happenchance Backpackers)이라는 여행 나눔 프로젝트를 2년 전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젊은 친구들에게
첫 여행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겁니다.
일년에 한 번, 서너 명의 친구들을 뽑아 제가 같이 여행하기로 했는데
목적지며 일정 등을 결정하는 권한은 모두 그 친구들에게 일임합니다.
그들이 정했던 목적지가 인도와 페루 그리고 호주였지요.
2014년에 출판된 인생의 지도도 일종의 여행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 마치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창작 과정 또한 하나의 여행이 아니었을까 하는 연상도 되구요. 어떻게 해서 인생의 지도를 쓰게 되셨어요?
인생의 지도 작업은 뭔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한 작업이 아니라 그걸 뭐라고 해야 할지는 저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네요.
비행기 안에서(저는 비행기 안에서 가장 창의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 문득 갈림길에 대한 이야기를 봤고
그걸 제가 좋아하는 아이템인 지도로 나만의 갈림길 집합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게 시작이었고요.
대략적인 구조를 같은 비행기 안에서 주먹만하게 스케치했던 것이 유일한 계획이었습니다.
일본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돌아오자마자 화방에 가서 큰 종이를 사서
무작정 그려나가기 시작했지요.
시작도 구체적인 갈림길들도 거의가 즉흥적인 작업에 가까웠지요.
지도의 구상이나 디자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을 위해 과정을 좀 설명해주시겠어요? 디테일, 좌표, 길 등등… 완성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이전까지의 그림과 달리 ‘계획’이라는 부분이 간략하게나마 필요했습니다.
일단 키워드를 108개 뽑기 위해 고민을 했는데요,
제가 살면서 행동 혹은 생각의 대상이 되는 키워드를 이것저것 뽑아보고
(이 역시 즉흥적으로) 바둑판 모양의 종이 위에 배열을 했습니다.
그리고 개략적인 대륙의 윤곽과 길의 형태만 연필로 그린 다음
바로 그리기 시작했죠.
아이디어 – 1시간
키워드 뽑기 – 10시간
계획 – 1시간
그리기 – 5달
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각 키워드에 맞는 글들을 쓴 게 있는데
지도 위에 쓴 글들 역시 그림을 그리며 즉흥적으로 쓴 것들이고,
페이지 옆에 따로 아포리즘처럼 쓴 것들은
출장으로 미국으로 오고 가는 비행기와 숙소에서 시차 부적응으로 깨어있던 시간 사흘 동안 썼습니다.
너무 대충 만들었죠? ㅋㅋ
멋진 즉흥의 힘입니다!
아포리즘이 인상적이었는데 때로는 보편적 진리 같지만 때로는 유머러스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한 것 같았어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일까요?) 보편적인 듯 보이지만 문화권에 따른 특수성이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지도 옆의 아포리즘을 통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시작은 모든 게 개인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는 있었지만 제가 삶의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깐요.
단지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는 관점에서
말씀하셨던 대로 한 개인의 삶은 사회의 보편적인 특수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거창한 생각들로 작업을 했던 건 아니지만요 ㅋㅋ)
그림은 아무래도 어떤 생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 힘들죠.
다만 그 생각에 의해 (즉흥적인 것이었을지라도) 나름의 구도와 모양새가 은연 중에 나온다고 봅니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글이 있고 그림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림 먼저 그리고 다시 키워드만 가지고 생각을 끄집어냈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던 제 개인의 마음 속에 있던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로,
또 한편으로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아포리즘들을 써나갔습니다.
그럼 무의식이 먼저 그림으로 표현되고 아포리즘은 그것을 언어로 설명 내지는 정리하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해도 되는 건지요?
아 제가 주절주절 말씀 드린걸 한 번에 정리해주셨네요 ㅎㅎ
장소와 장소의 경계는 바다나 호수, 강 그리고 숲이나 산이 있을 수 있고
어느 정도 경계들을 만들어야 하는 부분에는 이런 것들을 배치했습니다.
대입하면 삶의 어떤 요소와 삶의 또 다른 요소들 사이에는 시간, 지역, 사람들과 같은 경계가 있을 텐데
그 경계가 지형으로 표현된 거죠.
그림에서 한국적인 특성이 있다면
제가 ‘평지의 숲’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었고 그게 그림에 드러나면서 동양적인 느낌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의 문화지형적 특성상 평지는 모두 경작지고 숲이란 경사가 높은 산에만 있는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으니깐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평지에도 많은 숲이 있고 평지의 숲과 산의 숲의 느낌은 많이 다르겠지요.
그래서 거의 모든 숲들이 산으로 표현되어 동양적인(한국적인) 느낌의 그림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몇 군데에는 평지 숲도 그려 넣어봤지만요)
듣고 보니 정말 숲은 산에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군요. 그림의 산들은 한국의 낮고 둥근 산들을 연상시켜요.
이 지도에는 가상의 대륙인 니히르반이 나오는데요. 대륙의 이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니히르반은 사람들 각자의 안에 존재하는 대륙인가요? 또는 모든 사람들이 한 대륙에 다함께 거주하면서 각기 다른 길을 걷는건가요? 아니면 각자 다른 지도 안에 다른 대륙을 가지고 있나요?
Nihilism, Nirvana, 그리고 독일어로 기찻길(?)을 뜻하는 Bahn까지
역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당히 조합했지요.
아마도 제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 삶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제 설정은
니히르반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수만큼의 니히르반 대륙들이 있다는 비밀이 있지요.
각각의 대륙의 모습은 엇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길들이 있고요.
책을 읽는 방법도 독특해요. 지도 위의 길은 독자가 컨트롤하고 예측 할 수 있는 직선로가 아니라서 내가 이 여행의 어디쯤에 와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거든요. 언제 종점에 도착하게 될 지 모르니 약간의 긴장도 있어요. 이런 미로 같은 구조도 책의 테마나 메시지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어디쯤에 와있는 것인지, 어느 곳에 도착했더라도 그게 전체의 어디쯤인지 모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물론 이건 가상이고 한 개인이 창작한 작디 작은 세계이기 때문에 원하는 때며 언제나 전체의 지도를 볼 수 있게 되지만
적어도 전체 지도를 보기 전의 상황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닮아있길 바랬었나 봅니다.
“인생의 목적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정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당연히 그걸 지켜보는 내가 행복해진다. 따라서 앞서 길게 정의했던 인생의 목적은 사실 개인의 행복으로 수렴된다” 라고 쓰셨는데 어떻게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셨어요?
그리고 지겨움을 행복의 반대말처럼 쓰신 것도 흥미로웠어요. 흔히들 행복의 반댓말로 생각하는 슬픔이나 절망이 아니고 왜 지겨움인가요?
결론은 귀납적이었습니다.
어떤 체계적인 사고과정이라기 보다는
인생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니 결국 이거 정도가 남는구나.. 라고 한 거죠.
그리고 그 역시 진리는 아닐 수 있었기 때문에 ‘–라고 정한다’라고 했지요.
슬픔이나 절망은 삶을 이루는 기본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취하거나 피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노력에 의해 얻어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지겨움이 그 반대에 있었던 건 행복의 반대 영역에서 마음먹기에 따라 피할 수 있는, 불행을 이루는 가장 독보적인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절망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연유합니다. 지겨움은 행복처럼 감정의 주체가 나 자신이죠. 물론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슬퍼하는 어떤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다고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기사를 읽는 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건축을 전공했고
현대 건축의 많은 속성들 중에서도
다소 보수적인 입장인 예술적 건축에 관심이 있습니다.
단순히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것을 떠나
공간 역시 문학이나 미술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점이 있을 것이고
그걸 찾아 만들어가고 싶은 바람이 있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엉뚱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잘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충분히 실컷 놀아야 또 즐거운 상상들을 하고 뭔가를 만들 수 있으니깐요.
앞으로 1, 2년 간은 열심히 놀러 다닐 생각입니다.
저는 격렬하게 노는 걸 잘 못합니다.
단지 제게 논다는 건 일상에서 벗어나는 의미고
그래서 거창하지 않게 슬쩍 교외로 다녀오는 것도 제 놀이의 한 방법입니다.
3년 동안 진행해왔던 우연한 배낭여행(happenchance backpackers)도 네 번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말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뭔가 의사를 표현하고 싶을 때는 글을 씁니다.
그게 모여서 책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조금 놀았더니 벌써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당장, 누가 봐주지 않더라고, 그래서 묻히더라도 상관없는,
영화 시나리오를 하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강연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누군가 질문을 하셨습니다.
꿈이 뭐냐고 말이죠.
흔한 질문인 것 같은데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재미를 잃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미지 © 오기사 (오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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