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지난해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여인 두 명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자신 있게 드라마 작가 김은숙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다른 한 명은 이 작가의 작품 속 여주인공 이름을 병원 진료시 가명으로 쓸 정도로 그의 팬이자 2017년 3월 실업자가 된 여인―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김은숙은 지난해 2월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12월 tvN 드라마 ‘도깨비’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2016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드라마 좀 봤다 하는 시청자 중 그의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애기야, 가자” “이 안에 너 있다” 등의 명대사로 회자되는 인기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쓴 작가다. 2003년 드라마 ‘태양의 남
쪽’으로 데뷔한 김은숙은 이듬해인 2004년 ‘파리의 연인’으로 전국 시청률 56.3%, 서울 수도권의 경우 57.6%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후 쓰는 작품마다 최소 ‘중박’에서 ‘대박’을 치며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사랑 딱 하나 못 가진 재벌 남성(백마 탄 왕자)과 가진 건 없지만 씩씩하고 긍정적인 여성(신데렐라)이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과 여심을 자극하는 대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서 깊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답습하며 ‘자기 복제’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가 꾸준히 사랑받은 건 맛깔난 대사 덕이 크다. (그는 과거 제작발표회에서 “자기복제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닌다.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도 하는데, 왜 자꾸 딴 거 하라고 하나. 딴 거 하면 안 볼 거면서. 잘 하는 걸 열심히 하면 안 되겠는가”라고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은숙 월드 여주인공 대다수는 ‘신데렐라’의 변주다. 물론 아닌 작품―‘프라하의 연인’에서는 여주인공이 대통령의 딸이고 남주인공이 강력반 형사다―도 있지만 워낙 히트작들이 남긴 인상이 강한 탓이다. 또한 그의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곤경을 겪어야 스토리가 굴러간다. 그래야 그를 구해줄 남주인공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인 작품인 ‘온에어’에서 톱스타 ‘오승아’의 입을 빌려 ‘셀프 디스’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작가님 드라마는 늘 재벌과 신데렐라인가 보죠? 둘이 만나면 부의 재분배니까 공평하네요.”)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이제 신데렐라들도 언제까지나 유리구두로 낚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여주인공 강태영은 나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 사진제공 : SBS
먼저 2004년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부터 살펴보자. 가난한 여주인공 ‘강태영(김정은 분)’은 파리로 유학을 갔다가 가정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최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수백억 원 대의 재산을 가진 재벌 ‘한기주(박신양 분)’. 강태영은 우연한 기회에 한기주와 함께 상류층의 화려한 파티에 가게 되고 함께 춤을 춘다. 이윽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모든 드라마의 주인공이 그렇듯.
강태영은 극 중 사랑의 라이벌 ‘문윤아’의 말에 따르면 “잘 웃고 인정 많고 따뜻하고, 가진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용감하고 씩씩하고 당찬” 인물이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다소 답답한 면도 없지 않다. 하루는 강태영이 예의 없는 인물에게 수모를 당한다. 그 모습을 본 한기주는 강태영을 데리고 나와 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느냐고 다그친다. 강태영은 “마음 같아선 소리 지르고 싶었죠. 근데 그 사람 한기주 씨 친구잖아요. 나는 한기주 씨 생각해서 참은 거라고요”라고 말한다. 한기주가 말한다. “누가 너더러 참으래? 그리고 참을 이유가 뭐야?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 하냐고?” 그리고 이어지는 여주인공의 대답. “이 꼴을 하고서 어떻게 그래요? 저런 사람들 틈에서 내가 어떻게 그래요? 그러면 한기주 씨 입장이 어떻게 되는데요? 내 자존심 세우자고 당신 망신 줄 순 없잖아요. 내가 어떻게 그러냐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금수저 사이에서 흙수저가 소리치고 저항한다 한들 꿈쩍이나 하겠는가. 결국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키스―한국 드라마사에서 최고로 꼽히는 키스신 중 하나다―였다.
강태영은 늘 자신에게 과분한 것이 온다 싶으면 움츠러든다. 참는 건 일상이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한다. 이야기 전개를 위해 강태영은 다시 곤경에 빠진다. 한기주는 그를 돕고자 애인 행세를 하며 “아저씨, 우리 애기 놀랜 거 안 보여요? 가만히 있어. 우리 애기 안 놀랬니? 오빠가 알아서 할게. 애기야 가자!”라고 말하곤 그를 곤경에서 끄집어내는 영웅이 된다. (이 장면 이후로 한국의 많은 연인들 간 애칭이 ‘애기’로 바뀌기도 했다.)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여주인공 길라임. / 사진제공 : SBS
이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연인’으로 연인 3부작을 완성하고, ‘온에어’와 ‘시티홀’ 등 방송사와 정가를 소재로 작품을 쓴 김은숙. 그가 2010년 쓴 메가 히트작이 바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다. 가난한 여주인공 ‘길라임(하지원 분)’은 재벌 남주인공 ‘김주원(현빈 분)’과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진다. 여기만 보면 지난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녀의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을 썼지만 진부한 클리셰다. 그럼에도 작품은 ‘시가(시크릿 가든) 앓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35.2%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했다. 주인공들이 커피숍에서 말싸움을 하다가 길라임의 입에 묻은 카푸치노 거품을 김주원이 닦아주는 장면은 ‘거품 키스신’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종영 이후 커피숍에서 ‘거품 있는 커피(카푸치노)’ 메뉴의 매출이 상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길라임은 강태영과 무엇이 다를까. 일단 전문성 있는 직업이 생겼다. 길라임은 스턴트우먼이다. (전작에서도 방송작가, 연예인, 공무원 등의 직업을 가진 여주인공이 있었으나, 여기에서는 ‘빅 히트’를 친 작품 위주로 살펴보기로 한다.) 분명 위험하고 기술을 요하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하던 ‘파리의 연인’ 강태영과는 다른 부분이다. 성격도 당차졌다. “이 돈 받고 내 잘난 아들에게서 떨어져”라고 말하는 재벌집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의 대표적 클리셰이다. ‘시크릿 가든’에도 영락없이 이런 장면이 나오지만 반전의 키는 여주인공이 쥔다. 김주원의 어머니가 아들과 헤어지라며 여주인공에게 돈 봉투를 내민다. 그리고는 “자, 고졸이라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 거야. 이걸로 깔끔하게 정리하자. 지장 찍고. 안 그럼…”이라고 말하는데, 길라임이 “얼굴에 물 부으시게요?”라고 받아친다. “못 할 것 같니?”라는 어머니의 말에 돈 봉투를 받아 든 길라임. 아니, 돈 봉투를 받고 사랑을 접는 주인공이라니? 이어지는 길라임의 한 마디는 시청자의 속을 시원하게 한다. “오케이. 일단 보고요. 에게~ 생각보다 스케일이 작으시네요. 아, 혹시 달에 한 번씩 주시는 건가?”
길라임은 감정 표현에서도 거리낌이 없다. “이 바보야. 물거품 되자고 예쁘고 행복하게 사랑 키워갈 여자가 어딨니? 세상 어떤 여자도 끝을 내놓고 사랑을 시작하지 않아. 우린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우린 답이 없어”라는 말을 강태영이 하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제 내 구질한 현실에서 그만 나가줘. 나가서 원래 살던 동화 속에서나 살아. 예쁘게.” 이 역시도 길라임이 남주인공에게 하는 대사다. ‘시크릿 가든’에서는 ‘인어공주’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나온다. 김주원이 길라임을 좋아하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며 “인어공주 길라임의 좌표는 항상 두 분류 어디쯤일 거야.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 거품처럼 사라져 달란 얘기야. 그게 나란 남자의 상식이야”라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파티장으로 김주원을 찾아간 길라임은 이렇게 받아친다. “그쪽을 못 봐서 힘든 것보단 만나서 힘든 게 더 참기 쉬울 거 같아서. 나 너 보러 왔다고. 이게 내 대답이야. 근데 인어공주는 안 해. 그러니까 그쪽도 이제 대답해줘. 아직도 난 인어공주밖에 될 수 없어?”
이후 김은숙의 여주인공들은 한층 똑 부러지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소위 말하는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도 없다. 2016년은 SBS에서 주로 작품을 해온 탓에 ‘SBS 공무원’ 소리를 듣던 김은숙이 KBS와 tvN에 ‘은혜’를 베푼 해이자 김은숙 월드 여주인공들에게 큰 변혁이 있던 해였다. 또한 김은숙 자신에게도. (그는 그해에 작품 결이 완전히 다른 후배 작가와 공동 집필을 했으며 사극이 가미된 현대극에 도전해 큰 성공을 거뒀다.)
2016년 방송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수년째 시청률 하락과 광고 기근에 허덕이던 KBS에 내린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한국과 가상의 분쟁 국가 우르크를 넘나드는 작품은 육군 장교 ‘유시진(송중기 분)’과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을 통해 군인과 의사의 가치관과 사랑을 그렸다. KBS는 이 작품을 중국에 팔며 총 400만 달러(약 48억 원)를 벌어들였다. 제대 후 복귀한 송중기에게 날개를 달아줬고, ‘탈세 논란’으로 이미지가 나빠진 송혜교에게 이미지 쇄신의 기회를 줬으며 조연인 진구와 김지원까지 주요 광고를 꿰차는 등 김은숙의 ‘승은’을 입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여주인공 강모연은 소신을 가진 의사로 나온다. / 사진제공 : KBS
‘태양의 후예’는 김은숙이 김원석 작가와 공동 집필한 작품으로 오래간만에 재벌이 아니라 군인과 의사가 연애하는 작품이다. 13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가 스케일도 한층 커졌다.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국경 없는 의사회’가 원작이다. 원작에서는 유시진도 의사였지만, 드라마화 되며 직업이 특전사로 바뀌었다. 회당 5000만 원 이상의 원고료를 받는 스타 작가가 후배 작가와 함께 작업했다는 소식에 업계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그가 변화를 갈구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주인공 강모연은 생명의 존엄함을 중시하는 소신 있는 의사다. “의사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라고 묻는 유시진에게 대답 대신 “군인이면 여친 없겠네요? 빡세서”라고 당차게 되묻는다. 주인공들은 극 초반에 헤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반대’가 아닌 ‘가치관의 차이’로. 유시진이 “저는 군인입니다. 때론 내가 선이라 믿는 신념이 누군가에게 다른 의미라 해도 저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합니다”라고 하자 강모연은 “전 의사입니다.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선 가치나 이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하지만 제가 기대한 만남은 아닌 것 같네요”라고 답한다. 이후 우르크에서 재회한 두 사람. 아랍 연맹 의장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강모연은 의장의 주치의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는다고 주장한다. 유시진은 명령 불복종을 감수하고 그의 편에 선다. “복잡한 이야기는 됐고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만 대답해요. 의사로서”라고 하는 그에게 강모연이 말한다. “살릴 수 있어요.” 물론 “그럼 살려요”를 외치며 총구를 겨누는 멋진 장면은 남주인공의 몫이었지만, 직업에 대한 강렬한 신념을 가진 여주인공의 등장은 퍽 반가운 일이었다.

불멸의 삶을 사는 도깨비 김신과 도깨비 신부 지은탁의 사랑을 그린 tvN 드라마 ‘도깨비’. / 사진제공 : tvN
‘태양의 후예’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김은숙은 그해 겨울 ‘도깨비’로 연타석 홈런을 친다. 그는 2012년 자신의 트위터에 “저도 꼭 사극 해보고 싶은데 현대극을 이리 잘 쓰니(저 원래 자뻑 심해요. ㅋㅋ) 사극을 왜 하냐며 다들 말리시네요. ㅠㅠ 저희 사장님도 방송국도..ㅠㅠ”라고 적은 바 있다. 사극을 하고픈 욕망을 ‘도깨비’를 통해 조금이나마 푼 것이다. 시청자들이 “왜 그동안 사극을 안 했느냐”며 원성 아닌 원성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도깨비’의 남주인공 ‘김신(공유 분)’은 재벌을 뛰어넘은 초능력자다. 고려 시대 무신이던 김신은 자신이 지키던 주군의 칼날에 처참하게 죽임 당한 뒤 “오직 도깨비 신부만이 그 검을 뽑을 것이니 그럼 무로 돌아가 평안하리라”는 신의 말과 함께 불멸의 삶을 사는 도깨비가 된다. 김신은 시시 때때로 초능력을 쓰고 재벌 이상의 부를 누린다. 반면 고등학생인 데다 제대로 된 가족도 없는 여주인공 ‘지은탁(김고은 분)’은 이모와 사촌에게 미움을 받는 꼴이 전형적인 신데렐라다. 나중에는 살던 집도 없어져 김신의 집에 얹혀산다. 그가 특별한 건 도깨비 신부라서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점 정도다.

tvN 드라마 ‘도깨비’의 지은탁은 기존 김은숙 작품 속 여주인공들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 사진제공 : tvN
이런 상황적 특수성 때문에 지은탁을 전작의 여주인공들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혈혈단신 고등학생이 돈과 능력(과 초능력)이 있는 남주인공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신과 삼신할머니, 도깨비와 저승사자에 악귀까지 다 뛰어든 마당이라 더더욱 운신의 폭이 좁다. 그러나 같은 작가의 작품인 ‘상속자들’의 고등학생 ‘차은상(박신혜 분)’만 보더라도 지은탁의 변화는 명확하다. 차은상보다 덜 울고, 더 솔직하며 적극적이다. 지은탁은 “저랑 결혼해요. 아저씨, 사랑해요”라고 남주인공에게 매사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자신이 불을 불어서 끄면 도깨비를 불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남주인공을 불러낸다. 강모연이 ‘의술’로 주변 사람들을 살린다면, 지은탁은 ‘귀신을 보는 능력’으로 주변 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준다. 아르바이트로 바쁜 와중에도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열중해 2017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1~2등급을 받고―참고로 차은상은 전교 53등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가고, 꿈에 그리던 라디오 PD가 된다. 주어진 운명은 가혹했을 지언정 그 운명을 ‘선택’하는 건 늘 지은탁 자신이었다.

김은숙 작가. / 사진제공 : SBS
부유하지 않은 집의 장녀로 태어난 김은숙 작가는 젊은 시절 강태영이나 지은탁처럼 어려움을 겪고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언니 드라마 한번 써볼래?”라는 제안에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이 한 말은 “드라마 쓰면 돈 많이 주나?”였다. 이 때문인지 여주인공들의 삶에는 알게 모르게 작가의 삶이 묻어난다. ‘태양의 후예’에 송중기를 캐스팅하고자 직접 제대 현장에 찾아가고, 공유를 ‘도깨비’에 섭외하기 위해 5년 간 공을 들인 그의 열정과 노력 말이다. 13년 전 “애기야, 가자”하면 뒤를 졸졸 따르던 여주인공이 불을 꺼서 남주인공을 직접 불러내는 방식으로, “어떻게 저 남자가 내 애인이라고 말하느냐”며 감정 표현을 주저하던 여주인공이 “나랑 결혼해요. 사랑해요”라고 해맑게 말하는 방향으로. 그렇게 김은숙 월드의 여주인공들은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작품이 끝나면 쉬기에 바빠 매번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해온 그지만 2010년도 초반 한창 트위터를 하던 시기에는 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흔적이 남아 있다. “경험보단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제가 제 연애 경험으로 지금껏 드라마를 썼을까요? 내가 한 연애보단 하고 싶은 연애가 드라마가 됩니다.” “저는 영감을 얻어 글 쓰는 작가는 아닙니다. 죽어라 생각해서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듭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문학’이 아니라 ‘수학’이다 라고 후배들에게 말해줍니다.” “드라마는 겪어서 쓰는 이야긴 몇 개 없어요. 다 만들어 쓰는 겁니다. 현실보단 공상 속에서 더 설레니까요.” 모두 그의 말이다. 그의 조금 더 멋진 공상,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 더 멋진 모습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진화한 여주인공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