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선수는 국가대표도 아니고 프로페셔널도 아니다. 재능 있는 유소년 선수(youth player) 선수 한 명이다. 이 말은 비유법이 아니다. 국가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이 선수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1998년생 이승우다.
바르셀로나가 영입한 “초등학생”
이승우를 한국 최고 인기 선수로 올려놓은 건 소속팀이 바르셀로나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 축구팬이든 선수의 소속팀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국적에 따른 동질감이 강한 한국 축구팬들은 더욱 그렇다. 박지성이 세계 최고 클럽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는 건, 그가 은퇴한 지금까지도 축구팬들의 자부심이다. 일본인 가가와 신지가 2012년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가며 “박지성이 있다는 것도 이적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을 때 한국인들의 자부심은 더욱 커졌다.
바르셀로나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보다 위상이 높다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다. 특히 박지성이 뛰던 시절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와 두 번 만나 모두 패배하기도 했다. 한국 축구팬들에게 바르셀로나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비록 유소년 선수지만 한국인이 바르셀로나에 입단한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승우는 초등학교 시절 막을 수 없는 공격수였다. 한국의 유소년 리그는 학교 축구부가 주로 참가한다. 이승우가 속한 대동초등학교는 11, 12세 중 가장 뛰어난 공격수를 잘 ‘스카우트’(전학시킨다는 뜻이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동초등학교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Danone Nations Cup’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이승우는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승우 인생을 바꾼 사건이었다. 이승우에게 바르셀로나 스카우트가 다가와 이적을 권했다.
그러나 유소년 선수의 국제 이적은 금지돼 있다. FIFA는 어린 선수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팀에서 축구를 배워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아직 느슨하던 시기에 이승우는 가족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다. 이승우의 부모는 어린 둘째 아들에게 가족의 운명을 걸었다. 그런데 FIFA는 선수 이적에 대한 규정 중 소수자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19항을 적용해 이승우를 비롯한 한국 선수 3명과 바르셀로나를 징계했다. 선수의 국제 이적은 18세가 넘은 선수에 한해서만 가능하다(’International transfers of players are only permitted if the player is over the age of 18.‘)는 규정이다.
이 규정에도 불구하고 빅 클럽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등지의 어린 선수들을 공공연하게 수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만 징계를 받은 것이 불공평하다는 불만도 있었다. 그러나 항소는 실패했다. 2013년 시작된 징계는 이승우가 18세가 되는 2015년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어떤 경기도 뛸 수 없었다. 이승우가 바르셀로나의 또래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시기였다. 한국 축구팬들은 성장이 정체될까봐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5월 열리는 U-20 월드컵의 핵심 선수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최고 공격수라는 건 성장하기에 따라 리오넬 메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승우의 플레이를 직접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승우의 실력과 매력을 한국 사람들이 처음 실감한 건 2014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U-16 아시아 챔피언십이었다.
생중계되는 이승우의 플레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승우의 과감한 돌파와 절묘한 패스를 보며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천재 선수’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승우는 한국을 결승전까지 이끌었다. 특히 8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두 골을 넣어 한국의 승리를 이끈 경기가 결정적이었다. 한국인들은 일본 축구와의 라이벌전을 전쟁처럼 생각한다. 이승우는 경기장 절반을 가로지르는 드리블로 일본 수비 4명을 돌파한 뒤 골을 넣었다.
결승전 상대는 일본 다음으로 중요한 라이벌인 북한이었다. 우승을 예상한 KFA(Korea Football Association)는 황급히 기자들을 방콕으로 초청해 결승전을 취재하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의 ‘사회주의식’ 축구에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다. 괜찮았다. 우승은 놓쳤지만 이승우는 진짜 스타가 됐다.
KFA 입장에서 이승우는 중요한 선수다. 올해 5월 한국에서 열리는 FIFA U-20 월드컵 때문이다. 정몽규 KFA 회장(세계적 축구 거물인 정몽준 전 KFA 회장의 사촌동생이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벤트다. 이 대회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내려면, 그리고 국민적 관심을 받으려면 이승우가 중요하다.
“이승우를 당장 국가대표팀에 소집(call up)하라”
이승우의 플레이는 지난 3월 다시 생중계됐다. 손흥민, 구자철, 기성용 등이 주축이 된 국가대표팀이 부진을 거듭하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할 거라는 위기의식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이때 이승우를 비롯한 U-20 월드컵 멤버들은 한국에서 열린 친선대회에 참가했다.
이승우는 다시 한 번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천안에서 잠비아를 상대로 넣은 칩슛이 화제였다. 한국 공격수가 국가대표팀에서 이 기술을 쓴 건 2002년 안정환 이후 처음이다. 바르셀로나 프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해 ‘성장할 시기를 이미 놓친 것 아니냐’는 부정적 평가를 받던 이승우가 천재 이미지를 회복했다.
이승우는 실력뿐 아니라 경기장에서 자신만만하고 솔직하고 승리에 굶주린 모습을 보여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국가대표팀이 무기력한 플레이를 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실력과 함께 태도에 매료된 한국인들은 이승우와 상관없는 축구 기사에도 “이승우를 당장 국가대표팀에 올려라”라는 댓글을 잔뜩 달기 시작했다.
이승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잠비아를 상대하는 경기에서 동료 수비수 정태욱이 머리를 부딪쳐 기절했다. 이승우는 대처가 늦은 의료진을 향해 “빨리 하라고, 씨발 빨리 하라고”라고 욕을 했다. 이 소리가 중계에도 나왔다. 경기장 위에서도 예의 바르고, 심하면 위축된 것처럼 보이는 한국 유스 선수들 사이에서 이승우는 독특한 존재다. 그만큼 더 주목받는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이승우보다 어린 나이에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는 선수는 많다. 그러나 대부분 프로 선수로 자리를 잡은 경우다. 프로 데뷔도 하지 못한 선수를 대표팀에 불러들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는 1군 아래 B팀이 있다. B팀부터 프로 선수다. 아마추어 단계에 있는 이승우는 B팀 진입이 목표다. 사실 몇 년 전 이승우가 받았던 기대에 비하면 19세까지 프로 데뷔를 하지 못한 건 너무 늦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메시는 17세 때 1군에 데뷔했다. 이승우의 징계에서 비롯된 미묘한 상황이다.
프로도 대표도 아니지만 이승우는 한국에서 가장 상품성이 높은 선수 중 하나다. 이승우는 작년까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작년부터 아디다스와 계약을 맺고 구자철, 김승규 등 국가대표들과 비슷한 비중으로 광고에 등장한다. 최근 활약을 통해 이승우의 가치는 다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승우에게 5월은 운명이 갈리는 시기다. U-20 월드컵은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세계 구단들에 자신의 능력을 선보일 기회다. 한국 축구팬들은 투지와 열정이 장점인 기존 축구 스타일보다 더 세련된 스타일에 대한 선망이 있다. 2004년 웨인 루니를 보던 잉글랜드의 감정과 비슷하다. 유로 2004에서 루니는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며 4골을 터뜨렸다. 루니는 잉글랜드 공격의 희망이 될 거라는 기대를 받았고, 지금 이승우처럼 18세였다.
U-20 월드컵이 끝나면 바르셀로나에서도 본격적인 진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B팀으로 승격한 뒤 1군 진입을 노리거나, 생존에 실패하면 다른 팀을 찾아가야 한다. 한국 축구의 구세주가 맞는지 확인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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