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군가와 싸우고 싶다면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 것이다. 특히 애플 제품과 비교하면서. ‘삼성 vs 애플’이라는 제목을 단다면 특별한 내용이 없어도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그 글은 수분 내에 전쟁터가 된다.
한국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이 갖는 이미지는 독보적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한편으로는 경제 면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보니 한국을 ‘삼성공화국’이라고 부르며 조소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런 삼성에 최근 악재가 이어졌다. 지난해 갤럭시 노트7의 폭발로 인한 단종 사태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까지. 삼성전자가 4월 27일 2017년 1분기 컨퍼런스 콜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향후에도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도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즈>> 등의 외신은 이 배경에 이재용 부회장 구속 같은 여러 악재에서 비롯된 국내 정계의 혼란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래도 삼성은 삼성이다. 여전히 잘나간다. 최근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1분기 실적이자, 역대 두 번째로 좋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연결 기준으로 매출 50조5500억원, 영업이익 9조9000억원에 달했다. 1분기 실적을 견인한 건 반도체. 2분기 이후 갤럭시S8과 갤럭시S8+ 출시로 스마트폰 판매 실적이 더해지면 실적 고공행진이 예상된다.
갤럭시노트7의 불명예스러운 퇴장 이후 베일을 벗은 갤럭시S8과 S8+는 4월 7일부터 예약 판매를 진행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4월 7일부터 17일까지 진행한 갤럭시S8·갤럭시S8+ 국내 예약 판매량은 100만4000대. 국내 예약 판매로만 100만 대 이상을 팔아치운 셈이다. 이는 갤럭시S7 예약 판매량(20만 대)의 5배, 갤럭시노트7 예약 판매량(40만 대)의 2.5배 이상이다. 유안타증권에서는 최근 투자 보고서를 통해 올해 갤럭시S8 시리즈의 연간 판매량을 5041만대로 추정했다. 갤럭시S8과 S8+는 미국, 인도 등에서도 호조세를 보이고 있고, 중국에는 5월 출시됐다. 향후 나올 갤럭시노트8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그러나 ‘삼성공화국’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칭에서 볼 수 있듯 국내에서 삼성에 대한 이미지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 무노조 원칙,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망자 보상 문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와 딸 정유라 씨 거액 지원 의혹… 이 밖에도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 발생 초기 관련 문제를 제기했다가 블랙컨슈머라며 비난받은 소비자 일부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1]
그럼에도 삼성이 건재한 이유는 뭘까.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에는 어김없이 ‘명예 삼성 직원’처럼 나타난 누리꾼의 옹호 댓글이 달리고, “이렇게 욕해도 삼성에서 취업시켜 준다고 하면 갈 거면서”라는 조롱성 댓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모두가 삼성의 ‘알바’일까? 일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다시, 왜일까? [2]
일단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무시할 수 없다. 때로는 종교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는 일부 애플 마니아들에게서도 느껴지는 분위기다. 다른 브랜드에서는 이 정도로 충성심 있는 소비자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안드로이드 사용자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 ‘안드로이드폰=삼성 폰’이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고 친절한 애프터서비스(AS)하면 삼성이라는 인식도 보편적이다.
그리고 삼성의 AS가 끝내주는 데에는 슬픈 이유가 있다. CBS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전국 160여 곳의 협력사에 AS 업무를 외주화하고 있다. 삼성은 서비스가 끝난 날부터 6개월간 본사 콜센터에서 고객에게 전화해 하청 업무 만족도를 묻고, 그 밖의 경로로 접수된 고객 불만을 듣는다. 이를 ‘고객 불만율’과 ‘VOC 발생률’로 계량화해 하청의 평가지표로 삼는다. AS기사들은 삼성전자서비스의 고객만족도 평가 기준을 맞추기 위해 비인간적인 수모까지 감당하고 있다. [3]
다음은 익숙함이다. 초기 물량 공세와 이벤트 등으로 삼성 폰을 구입해 사용하게 됐다면 어지간해서는 새롭게 휴대전화를 바꿀 일이 없다.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갤럭시 그거’라는 말로 통한다. 아무리 LG 스마트폰이 잘 나왔다고 해도 삼성 제품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갤럭시 그거’ 신형을 사는 것이다. 국내에서 애플스토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안드로이드폰(그중에서도 삼성 폰)을 선택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 아이폰을 쓰려면 아이튠즈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또한 삼성 폰 사용자에게는 또 하나의 난제다.
아마 한국에서는 직업적 이유로 안드로이드폰을 써야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주변 기자 중에서는 “아이폰을 너무 사고 싶은데 통화 녹음을 해야 해서 안드로이드 폰을 쓰고 있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영업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까짓 거 루팅하면 되지 않느냐고? 아이튠즈 사용법도 어려운 이들에게 루팅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업의 윤리성을 중시하는 해외에서 제품 폭발 사고가 났다거나 오너가 구속되는 상황이 있었다면 지금의 삼성처럼 건재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나이키, 로레알 등이 건재한 것만 봐도 아직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의 윤리 소비 인식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2013년 남양유업이 ‘갑의 횡포’를 부린 사실이 알려지며 전국적으로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남양유업의 주가는 나날이 떨어졌고 만년 2위였던 매일유업에 1위 자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불매 운동 때문에 저렴해진 남양 제품을 “싸다”며 구입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구매자와 불매자 간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왜 남양 불매는 되고 삼성 불매는 안 되는 걸까? 한 소비자는 “남양 제품은 소모품이 대부분이라 대체 브랜드가 많았다. 그러나 삼성 제품은 장기간 써야 할 전자제품이 주류라 불매 운동이 확산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이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로 ‘땅콩항공’이라며 비판받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항공편’이라는 대체제가 없다 보니 불매가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소비자는 “지극히 합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100만 원 이상을 내고 사는 제품을 고르는 최우선 기준은 품질과 편의성”이라며 삼성 제품을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여러 ‘어른의 사정’ 때문에, 앞으로도, 설령 ‘한국’이 무너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삼성공화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 또한 전쟁터가 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