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7 NBA final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5차전 중 네 경기에서 두 팀 모두 100점을 넘겼다. 세상에 이렇게 빠르고 화끈한 스포츠가 있나?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판 커리라는 스타의 대결 이전에, 엄청난 속도로 벌어지는 공격 농구가 재미의 원천이었다. 농구는 늘 더 재미있는 종목이 되기 위해 경기장 규격, 경기 시간, 반칙 규정 등 모든 것을 변화시켜왔다. 변화는 성공적이다.
농구와 대척점에 있는 종목, 변화를 가장 꺼리는 종목이 축구다. 축구는 규정 하나 바꾸려면 몇 년씩 걸리는 종목이다. 변화가 느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NBA는 다른 나라 농구 대회를 신경쓰지 않고 멋대로 규정을 바꾸지만, 축구는 FIF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의 지시에 따라 세계 모든 리그의 규정이 같다. 인원이 많고 경기장이 넓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서 규정 변화로 원하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애초에 규정이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수정할 여지가 적다. 축구는 단순한 종목이다.
VAR이 축구를 바꾸고 있다
호크아이 시스템을 시험 중인 모습.
국제축구연맹(FIFA)은 새로운 축구를 모색하고 있다. 그 발단은 아마도 골라인 테크놀로지일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시험장은 흔히 일본이다. 2012년 일본에서 열린 FIFA 클럽월드컵에서 두 가지 골라인 테크놀로지가 테스트 대상이었다. 초고속 카메라로 공의 위치를 파악하는 ‘호크아이’가 도요타에서 사용됐다. 테니스장에서 자주 쓰여 익숙한 기술이다. 공 안에 센서를 넣어 위치를 감지하는 프로그램은 요코하마에서 사용됐다. 두 기술 중 승자는 호크아이였다.
호크아이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결정적인 계기는 2013-14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였다. 순식간에 골라인에 걸쳤다가 튕겨 나온 공을 호크아이가 정확히 잡아내 득점 여부를 판명했다. 보수적인 축구계는 호크아이에 대해서도 불신을 갖고 접근했지만, 막상 도입해보니 판정이 정확해지는 걸 넘어 축구가 더 재밌어졌다. 이제 골라인에 걸친 공을 갖고 50년 넘게 답 없는 토론을 하는 대신, 전광판으로 얼마나 공이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는지 바로 확인하며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 축구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꺼렸다. 그러나 이젠 새로운 기술이 축구를 더 재미있고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을 비롯한 FIFA는 축구를 적극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이번에도 시험의 장은 아시아였다.
VAR, 즉 Video Assistant Referee System은 호크아이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오는 기술이다. VAR을 담당하는 심판들은 경기 내내 스타디움 밖에 있는 차량에서 모니터를 본다. 경기장 곳곳에 배치된 고성능 카메라가 전달하는 영상이다. 피치 위에 선 3명의 심판이 볼 수 없는 곳을 VAR이 보완한다. 기존 심판들의 실수를 VAR이 바로잡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오프사이드 판정이 있다. 오프사이드 상황에서 공격수와 수비수가 0.1초 차이로 엇갈리면 기존 심판이 오심을 저지르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VAR은 정지 영상을 통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뒤 주심에게 전달한다.
이 기술은 작년 12월에 일본에서 열린 ‘클럽월드컵’에서 처음 시범적으로 쓰였다. 올해 5월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도 시험 사용됐다. 나는 두 대회를 모두 현장에서 취재했다. 짧은 시간 사이에 반발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해 ‘FIFA 클럽월드컵’ 준결승전 도중 주심에게 항의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마드리드).
VAR은 클럽월드컵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준결승전에서 가시마 앤틀러스가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을 페널티킥 골로 꺾었다. 경기를 중단한 심판이 갑자기 경기장 가장자리로 갔다.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나시오날 수비수가 가시마 선수의 발을 밟았다고 VAR 심판이 이어폰을 통해 알려준 것이다. 생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시오날 선수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었다. 제대로 항의도 못 했다. 레알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클럽 아메리카를 상대로 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가 아닌지 비디오 판독을 통해 확인한 뒤에야 골 세리머니를 할 수 있었다. 경기 후 호날두, 루카 모드리치가 신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U-20 월드컵에서 비디오 판독은 더 적극적으로 쓰였다. 한국 선수들이 기니를 상대로 골을 넣은 줄 알고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있을 때, 주심은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잠시 후 골이 없었다고 선언했다. 선수들은 빠르게 새로운 경기 방식에 적응했다. 프랑스 선수들은 공이 이탈리아 선수의 손에 맞았다고 생각했을 때 페널티킥이 선언되지 않자 먼저 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비디오를 확인해보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VAR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항의 풍경이 축구장에 등장한 것이다.
감독들은 다들 VAR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신태용 한국 감독은 골이 무효 처리된 뒤 “받아들여야 한다. 선수들에게 VAR을 감안하고 경기하라고 말했다”고 했다. 새 규정을 노골적으로 거부한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
FIFA는 페널티킥 방식도 바꿨다. 두 팀 키커가 번갈아 차던 기존 방식(A, B, A, B…)을 벗어나, 킥 순서가 계속 바뀌도록(A, B, B, A, A, B, B, A…) 했다. 이렇게 하면 순서에 따른 불공평함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VAR에 비하면 사소한 변화를 통해 승부차기를 더 공정하게 만들었다. 더 재미있어지기도 했다. 세 경기나 승부차기까지 갔기 때문에 새로운 규정을 구경할 기회도 많았다.
지난 6월 수원, ‘FIFA U-20 월드컵’ 3위 결정전 승부차기에서 알레산드로 플리차리(이탈리아)가 우루과이의 킥을 막아냈다.
새로운 승부차기 규정이 가장 부각된 건 3위 결정전이었다. 이탈리아 골키퍼 알레산드로 플리차리가 우루과이의 2번 키커와 3번 키커의 킥을 연속으로 막은 것이다. 연달아 벌어진 선방 두 번으로 이탈리아가 크게 유리해졌고, 결국 승리했다. 새로운 규정이 준 짜릿한 순간이었다. 경기 후 이탈리아와 우루과이의 감독 모두 새 규정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밝혔다.
변화는 동아시아로부터
VAR 시스템은 6월과 7월에 걸쳐 열린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Confederations Cup)’을 통해 한 번 더 시험 받은 뒤, 문제가 없다면 ‘2018 러시아월드컵’에 쓰이게 된다. K리그도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VAR을 도입한다. 수입이 부족한 K리그 사정상 10억 원이 넘는 비용은 타격이지만, 오심 논란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FIFA는 더 큰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공격수였던 마르코 판 바스턴이 기술위원장직을 맡아 축구를 개혁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VAR과 승부차기는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변화는 축구를 90분에서 60분으로 줄이는 것이다. 대신 농구처럼 경기가 끊길 때마다 시계를 멈추는 방안이다. 현재 축구 경기의 실제 플레잉 타임은 50분에서 60분 사이다. 규정을 바꿔도 실제 경기 시간은 많이 바뀌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일부러 스로인을 만들고 코너킥을 만드는 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 같은 경기 시간으로 더 빠르고 극적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축구는 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실험실로 쓰였고, 성공적인 결과물이 세계 축구를 바꿔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2022년 월드컵쯤 되면 우리가 아는 축구는 과거의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