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5·18에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유독 투쟁현장이 많은 한국의 거리에서 단골로 불리는 민중가요이지만, 집회에 참여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북한노래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투쟁현장에서는 어떤 음악들이 불리고 있을까. ‘아침이슬’을 불렀던 양희은과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른 안치환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가수였지만, 유신정권 이후 대중가수에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한국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민중가수는 그들 이후로 명맥이 끊겼다. 여전히 한국의 투쟁현장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철의 노동자’가 시작과 끝을 장식하지만, 여전히 그 의미를 잇는 노래와 사람들은 존재한다. 단지 대중들에게 그 존재가 희미할 뿐.
음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소외받고 외면당하는 장르인 민중가요계에서 ‘이효리’라 불리는 임정득 역시 그렇다. 매일 다양한 투쟁이 있는 현장을 누비며 세 장의 앨범을 낸 그녀는 특유의 감수성과 음악적 매력으로 투쟁현장에 다양한 목소리와 사람이 있음을 알린다. 그녀를 만나 음악과 ‘현장(농성장,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99학번이라 대학에서 화염병이나 투쟁하는 모습을 본 적 없는 세대다. 민중가요는 지나가다 우연히 동아리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접했다. TV에서 들은 대중가요랑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가사가 너무 달라서 매력적이라 느꼈다. 내가 들었던 노래는 전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밖에 없었는데(웃음). 그래서 나한테 민중가요는 그냥 ‘가사 좋은 노래’였다. 이후 민중가요 ‘전화카드 한 장’, ‘불나비’, ‘청계천 8가’ 등을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가 좋아서 노래패를 들어갔는데, 그 노래가 맞닿은 곳이 시민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외치는 ‘현장’이더라. 그땐 나한테도 사회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있던 때라 선배들이랑 논쟁도 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파업하는 현장에서 처음으로 노래 부르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웃음). 그래서 거기서부터 내 생각을 다시 대입해서 계속 질문하고 배워나갔다.
사람마다 각자 부르는 의미가 달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빨갱이’, ‘좌파’ 이런 프레임을 씌워놓지 않나. 한편으론 자랑스러우면서 한편으론 염려된다. 나를 무작정 ‘투쟁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부담을 느낀다.
한 곡의 노래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또 현장에서 노래하면 내 음악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때 시너지가 생기고, 내 노래가 가장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살아가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펼치는 노래, 그것으로 나를 민중가수라고 불러준다면 그 타이틀을 감사히 받을 거다. 뭐, 투쟁 현장에도 삶이 있는 거고, 삶 속에도 투쟁이 있는 거 아닌가.
“현실이란 이름으로 나의 상상을 죽이고 적당히 누리는 삶을 자랑하듯 말한다
더 많은 공감을 위해 거친 표현을 다듬고 말하는 나는 이미 세상에 익숙해진 것 같아
꿈꾸던 영혼은 말라버리고 지친 몸뚱아린 저항할 힘조차 없어
사람들이 불가능이라 비웃는 꿈을 다시 꿀 때가 된 것 같아
가난한 이가 자유로운 세상을 상상한다
군대와 전쟁이 사라지는 세상을 상상한다
더 많이 가지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상상한다
사람이 사람 위에 서지 않는 세상을 상상한다“
상상하다, 임정득 1집 <자유로운 세계>
내 노래가 느리고 슬픈 곡이 많아서 그런가? 가봤던 현장 중 아팠던 현장이 많았다. 세월호나 투쟁하다 돌아가신 열사들 추모집회 같은.
가장 기억에 남는 집회는 아기자기했던 밀양 송전탑 현장이다. 원래 집회현장에 가면 많이 불러봤자 3곡밖에 못 부른다. 그리고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거나 결의를 다지는 센 노래만 불러야 한다는 압박도 은근 있는데, 거긴 그런 게 없었다. 대신 논밭에 앉아서 잔잔한 콘서트를 열었는데, 정말 하고 싶은 방식의 공연이었다. 반드시 승리해서 주변에 많이 자라는 은사시나무의 이름을 딴 ‘은사시나무 음악회’를 꼭 하자는 약속을 했는데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언젠가 꼭 다시 하고 싶다.
현장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잘 안 건드리는 경향이 있다. 마이크 몇 번 뺏기고, 무대를 없애버린 적은 있어도 내가 연행되거나 과도하게 진압당해본 적은 없다. 간혹 반대의 의사를 가진 사람 들이 노래하는데 난입해서 마이크를 뺏기도 한다.
가장 짜증났던 경험은 지역의 집회에서 노래 불렀을 때 채증 카메라에 찍혔는데, 담당 경찰서가 거제도더라. 그래서 거제도(서울에서 자동차로 400km 정도 가야 하는 거리)까지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웃음). 정말 멀었다.
맞다. 특히 학생인 경우에는 너무 안타까워서 나도 몇 번 후원했다. 나는 조사만 두어 번 받고 끝났다. 다행히 벌금은 없었지만, 경찰서에 가고 조사받는 과정이 긴장되고 힘들지 않나.
그게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전부인 건 문제다. 이 노래들이 갖는 의미는 존중하지만,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참여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서 참여성도 낮다. 예전엔 자체 문화를 이끄는 문화패가 집회를 자발적으로 끌고 나가서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재미만 있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다양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안에 있는 사람들도 고민이 많고 이 안에서 문화 활동하는 나도 반성할 지점이 있다. 문화는 앞서나가야 하는데 좀 더 과감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책망도 있다.
“창 밖 세상은 깨어 일어나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해야 할 일이 내 혈관 속에 햇살처럼 스며오네
언젠가 인지 알 수 없지만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변해 있을 이 세상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어“
벨라차오, 임정득 2집 <당신이 살지 않았던 세계> (개사 임정득, 2014년 단독 콘서트 현장)
아직도 80년대 학생운동 때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고, 그 안에서 세대 간에 공감이 안 되는 지점이 있으니까 그 부분도 문제다. 그분들 중 아직도 가부장적인 생각을 고수하는 분들도 많고,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고, 안에 있는 사람들도 집회가 좀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갈증을 느끼고 있다. 나는 이 안에서 문화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 그 부분에 대한 무게감이 더 크다.
그렇게 봐준다면 고맙다. 나는 사실 ‘대의’와는 거리를 두고 활동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발언을 한다고 해도 내가 그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생각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물론 내 노래 자체가 다른 사람의 삶에 연결되어 있고, 확인되는 순간이 공연하면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더 조심하는 편이기도 하다.
음악을 하면서 기능적으로 난관에 부딪히는 면이 있다. 스스로도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음악가는 아니라 평가하고.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내 색을 만드는 건 남과 차별화되는 지점에서 나온다 생각한다. 나한테 음악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가진 여러 방법 중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민중가요는 삶과 노래가 같이 가니, 결국 내 삶의 방식에서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나한테 두 돌인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교육과 환경.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뒷받침 해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나 조건이 안 된다(웃음). 아이가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안정된 환경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환경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권정생(한국의 아동문학 작가), 전태일(한국의 노동운동가) 같은 사람들이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막연한 것 말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지적받거나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불편해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 이를테면 운전을 하느냐, 대중교통을 타냐 하는 이런 문제 말이다.
나는 여전히 주말마다 집회에 가있다. 아직 바꿔야 할 것이 많다.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걸 투표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투표를 통해 바꿀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다. 정치적인 영역이 반드시 투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내가 살면서 체득한 방식이다. 선거제도 때문에 오히려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더 소외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해 더 마음이 쓰이고 내가 할 일이 많다.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삶이 변하는 것이 진정한 변화라고 본다. 선거라는 작은 부분의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다.
이미지 © 임정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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