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거대 헬스 케어 회사인 췐젠 그룹을 이끄는 슈유후이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5월 말이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TV로 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를 건 인물들은 “오바메양을 영입하게 해 주겠다”, “알렉시스 산체스를 당신에게 데려올 수 있을 것 같다” 등 책임질 수 없는 약속을 남발했다.
슈유후이는 중국 슈퍼 리그에 참가하는 팀 톈진 췐젠의 구단주다. 슈유후이가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췐젠은 빠르게 성장했다. 작년 중국 갑급 리그(China League One(Second division))에서 우승했다. 올해는 슈퍼 리그에서 5위에 올라 있다. 사상 처음 승격한 팀치곤 훌륭한 성적이다.
췐젠은 중국의 다른 팀처럼 세계적인 스타를 영입했다. 공격수는 브라질 대표 출신 알레샨드리 파투, 미드필더는 현역 벨기에 대표 악셀 비첼이다. 슈유후이는 여기에 한 명을 더 추가하고 싶었다. 췐젠이 오바메양을 영입하려 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공공연한 영입 제안이 있었다. 슈유후이 회장은 8,000만 유로를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
췐젠을 가로막은 건 중국 정부였다. 중국 축구는 아시아에서 가장 번창한 리그, 가장 강한 대표팀을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 노력이 너무 지나쳤다. 작년 12월, 상하이 상강이 첼시에서 오스카를 영입했다. 이적료가 무려 6,000만 파운드였다. 아시아 축구의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회수될 리가 전혀 없는 금액이었다. 같은 팀의 헐크는 4,600만 파운드, 장쑤 쑤닝의 알렉스 테세이라는 3,600만 파운드 등 비현실적인 이적이 이어졌다.
과도한 경쟁을 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태도를 바꿨다. 시 주석은 원래 중국 축구의 적극적인 투자를 권장해왔다. 중국 갑부들이 사재를 털어 축구팀에 투자한 건 시 주석의 교지에 따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회의에서 시 주석이 “오스카 이적료가 말이 되냐”고 과도한 경쟁을 지적하자, 축구계 전체가 즉시 태도를 바꿨다. 선수 영입 비용을 자제시키기 위해 외국인 선수 쿼터를 5명 보유, 5명 출장에서 5명 보유, 3명 출장으로 확 줄여버렸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두 번째 조치가 시작됐다.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팀은 이적료의 100%를 중국축구협회(Chinese Football Association, CFA)에 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엄청난 제약이었다. 슈유후이 회장이 오바메양 영입에 8,000만 유로를 지불하려면 기부금도 8,000만 원을 내야 하고, 결국 지출은 1억 6,000만 유로가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 이적료 신기록을 넘는 액수였다.
췐젠은 그럼에도 오바메양을 영입할 방법을 강구했다. 완전 이적 옵션이 포함된 임대, 이적료 분할 납부 등의 방법으로 장부상 이적료를 축소해보려 했다. 그러나 오바메양 같은 슈퍼스타를 임대 후 이적 방식으로 영입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췐젠은 분데스리가 득점 3위였던 공격수 앙토니 모데스테를 영입했다. 모데스테도 물론 스타지만 오바메양보단 훨씬 싸다. 임대 후 완전이적 형식 영입도 가능했다. 오바메양은 이적에 실패했고, 도르트문트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여름엔 야심찬 췐젠만 선수 영입을 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지만, 12월이 되면 다수의 중국 구단이 선수를 사고 싶어 할 것이다. 선수를 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중국 팀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중국 정부의 규정 변화가 한국 대표팀의 위기로 이어진 까닭
시진핑의 말 한 마디가 일으킨 영향력은 한국 대표팀의 위기를 불러왔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시진핑의 한 마디 > 외국인 선수 출장 축소 >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수비수들의 위기 > 한국 대표팀 경기력 저하. 차근차근 살펴보자.
아시아축구연맹(Asian Football Confederation, AFC)이 권장하는 외국인 선수 출장 한도는 4명이다. 국적 제한 없는 외국인 선수를 3명까지 뛰게 할 수 있다. 그리고 AFC 가맹국 국적 선수를 1명 더 등록할 수 있다. 흔히 아시아 쿼터라고 부른다.
한국 선수들은 아시아 쿼터로 가장 인기 있었다. 모든 면에서 아시아 정상권 실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의 헌신적이고 강인한 성격은 아시아 다른 나라와 확실한 차별성이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주는 아랍에미리트연합,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중국의 강팀들이 한국인 선수를 앞다퉈 영입했다. 시즌 시작 당시, 슈퍼리그의 16팀 중 9팀이 한국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광저우 헝다는 한국 수비수 김영권이 부상으로 전반기 내내 이탈하자 반년 계약으로 다른 한국인 김형일을 영입하기까지 했다. 옌볜 푸더는 특별히 거론할 필요가 있다. 이 팀의 연고지인 옌볜은 한국과 같은 민족인 중국 내 소수민족 조선족이 사는 곳이다. 옌볜 선수 대부분이 한국어를 쓰는 조선족이다. 감독도 한국인이고, 전반기엔 한국 선수 2명을 기용하다가 둘 다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자 새 한국인 선수를 또 영입했다.
규정 변화는 옌볜을 제외한 모든 팀의 한국 선수들에게 큰 타격이었다. 슈퍼리그에 한국 선수를 내보낼 팀은 거의 없었다. 허베이 화샤는 스테판 음비아, 에르나네스, 에세키엘 라베치 등 유럽에서 뛴 스타를 먼저 기용하려 했다. 김주영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봤다. 상하이 선화는 카를로스 테베스, 프레디 구아린, 지오반니 모레노를 선발로 썼다. 김기희는 명단에서 빠졌다. 연봉이 1,000만 유로를 넘는 선수와 수백만 유로인 한국 선수 중 한 명만 써야 한다면 당연히 더 비싼 선수를 쓰는 게 상식이었다.
이때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 예선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친 가운데, 대표팀 수비수 대부분이 소속팀에서 후보 신세라는 건 치명적인 문제였다. 유럽에서 뛰던 마지막 국가대표 수비수 홍정호마저 지난해 중국의 장쑤 쑤닝으로 이적했다. 한국은 3월에 열린 중국 원정 경기에서 충격적인 0-1 패배를 당했고, 6월엔 역시 약체로 분류됐던 카타르 원정에서 또 졌다.
여름이 다가오며, 한국 선수들의 팀내 입지는 서서히 회복됐다. 비결은 한국 축구 특유의 성실함과 실력이었다. 톈진에서 슈유후이를 만난 다음날, 췐젠에 소속된 한국인 선수 권경원을 만날 수 있었다. 권경원은 시즌 초반 파투, 비첼에게 밀렸다.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두 명의 브라질 출신 공격수와 경쟁을 해야 했다. 권경원은 “난 외국인 선수와 중국인 선수의 사이에 놓인 존재였다. 시즌이 시작할 때 내 컨디션이 제일 좋았기 때문에 선발로 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3경기 동안 계속 제외된 뒤 현실을 깨달았다. 아, 내가 뛰기 힘들겠구나.”
권경원은 1군에서 제외된 기간 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이 눈치챌 정도로 심한 좌절은 겪지 않았다. 늘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5월 말, 권경원이 선발 라인업에 포함됐다. 권경원이 3경기 연속으로 선발에 포함된 동안 팀이 단 한 골만 실점하고 모두 승리했다. 권경원은 그대로 주전이 됐다. 감독들은 외국인 선수 세 명을 모두 공격수로 채우는게 아니라 한 명 정도는 수비수를 써야 더 이기기 쉽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다른 한국 선수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김기희, 김주영, 톈진 테다의 황석호, 광저우 헝다의 김영권, 충칭 당다이의 정우영 모두 초반에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는 신세였지만 지금은 꾸준히 선발 출장하고 있다. 후보 신세일 때도 쉬지 않고 훈련을 계속 한 덕분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하고 신태용 감독을 새로 선임했다. 월드컵 예선이 단 2경기 남았다. 지금 순위를 지키지 못하면 월드컵 본선 직행에 실패한다. 굉장히 부담스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중국파’가 대표팀의 주류를 차지했다. 생애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권경원을 비롯해 김기희, 김영권, 김주영, 정우영이 그들이다.
한국인 수비수들은 중국 축구의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주전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대표팀에서도 자신들의 기량을 증명하는 것이 마지막 과제다. 중국은 오랫동안 한국보다 축구 실력이 떨어졌다. 중국 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해가 갈수록 기량이 퇴화될 거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 축구팬들의 은어로 ‘중적화(Chinese-footballization)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중적화는 오해일 뿐이라는 걸 증명하는 건 수비수들 자신의 몫이다. 한국은 8월 31일 이란, 9월 6일 우즈베키스탄과 경기한다.